건전지가 새는 건 오래돼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건이 하나 빠졌습니다. 누액은 제품이 오래됐다는 사실 하나가 아니라 방전된 채로 오래 방치되거나, 새것과 헌것을 섞어 넣거나, 덥고 습한 곳에 보관하는 조건이 겹칠 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하나만 걸려도 위험은 올라가고, 두세 개가 겹치면 반응이 눈에 띄게 빨라집니다.
그래서 먼저 셀 것은 연식이 아닙니다. 지금 기기에 꽂혀 있는 그 건전지가 세 조건 중 어디에 걸려 있는지부터 가리는 쪽이 순서에 맞습니다.
누액은 정말 오래된 건전지 탓일까요?
오래돼서라기보다, 방전된 상태로 오래 머문 탓입니다.
알칼리 건전지는 다 쓴 뒤에도 내부 반응이 딱 멈추지 않습니다. 반응이 이어지는 동안 통 안에 기체가 조금씩 쌓이고, 그 기체가 압력이 되어 밀봉된 자리를 안에서 밀어냅니다. 자리가 벌어지면 알칼리 성분이 그 틈으로 새어 나옵니다.
그래서 '오래된 건전지'라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제조된 지 몇 년 지났어도 최근까지 쓰다가 바로 빼둔 건전지는 위험이 낮고, 반대로 산 지 얼마 안 됐어도 방전된 채 서랍 속 기기에 몇 달 꽂혀 있었다면 위험이 큽니다.
세는 건 나이가 아니라 방전 이후의 시간입니다.
보관 자리가 여기에 한 겹 더 얹힙니다. 온도가 높으면 반응 속도 자체가 올라가고, 습도가 높으면 밀봉부 바깥쪽 금속이 먼저 부식돼 틈이 더 쉽게 벌어지거든요. 습기가 어느 경로로 드나드는지부터 따지는 순서는 옷장 구조로 제습제 자리를 가르는 기준에서 옷장을 볼 때와 같습니다.
새것과 헌것을 섞으면 뭐가 달라지나요?
직렬로 여러 개가 들어가는 기기는 건전지들이 한 줄로 이어져 같은 전류를 주고받는 구조입니다. 이 중 하나가 먼저 바닥나면 나머지가 남은 힘으로 그 자리를 밀어붙여, 다 쓴 쪽에 거꾸로 전류를 흘려보냅니다. 셀 역전입니다. 거꾸로 흐르는 전류는 정상 방전보다 훨씬 빠르게 기체를 만들어내서, 며칠 만에 누액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게 헌것을 섞었을 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둘 다 새것이라도 제조사가 다르면 방전 속도가 어긋납니다. 같은 매장에서 같은 날 샀어도 생산 시기가 다르면 초기 용량이 갈리고, 그 차이가 몇 주 만에 셀 역전을 부를 만큼 벌어지기도 하더군요. 새것이라는 건 상태가 아니라 라벨입니다. 그래서 안전한 조합의 기준은 '둘 다 새것'이 아니라 '같은 묶음에서 함께 꺼낸 것'이라고 봅니다.
충전지와 일반 알칼리를 한 칸에 섞는 것도 같은 자리에 걸립니다. 두 쪽은 내보내는 전압이 애초에 다릅니다. 낮은 쪽이 먼저 바닥나면서 역전의 출발점이 됩니다.
낱개로 남은 헌 건전지는 다른 기기로 옮겨 섞지 않습니다. 그 기기 하나에서 마저 쓰고, 바꿀 때는 한 칸을 통째로 바꿉니다. 산 날짜보다 지금 어떤 상태끼리 한 칸에 들어가 있느냐가 갈림길입니다. 달력 대신 상태를 보는 이 판단은 계절 옷을 날짜가 아니라 옷장 상태로 바꾸는 기준에 더 길게 적어뒀습니다.
넣어둘 기기와 빼둘 기기를 가르는 기준
기준은 사용 빈도가 아니라 확인 주기입니다. 매일 켜는 기기는 다 되면 그날 바로 표가 나서, 방전된 채로 오래 남아 있을 틈이 없습니다. 반대로 몇 달에 한 번 손이 가는 기기는 방전된 뒤에도 그대로 잠들어 있기 쉽고, 그 잠든 기간이 곧 누액이 자랄 시간이 됩니다.
| 기기 | 방전 후 방치 경향 | 판단 |
|---|---|---|
| 매일 쓰는 TV·에어컨 리모컨 | 먹통이 되면 바로 알아챔 | 넣어둔 채로 둬도 무방 |
| 계절에만 쓰는 난방기·선풍기 리모컨 | 계절이 끝나면 몇 달간 손대지 않음 | 계절이 끝나면 빼서 따로 보관 |
| 매일 보는 주방·거실 벽시계 | 초침이 멈추면 바로 눈에 띔 | 넣어둔 채로 둬도 무방 |
| 손님방·창고의 예비 벽시계 | 멈춘 뒤에도 오래 방치되기 쉬움 | 빼서 따로 보관 |
| 비상용 손전등·랜턴 | 비상시에만 확인, 주기가 몇 달~몇 년 | 빼서 따로 보관, 필요할 때 새로 넣기 |
| 자주 쓰는 무선 마우스·키보드 | 반응이 느려지면 바로 알아챔 | 넣어둔 채로 둬도 무방 |
표를 훑으면 갈림이 하나로 모입니다. 다 됐다는 신호를 사람이 얼마 만에 알아채느냐죠.
직렬로 여러 개가 들어가는 기기일수록, 확인 주기가 길수록 먼저 빼둘 순위가 앞으로 옵니다. 계절 가전은 이 두 조건에 동시에 걸리는 일이 잦습니다. 선풍기를 넣기 전에 손볼 것들은 선풍기를 넣기 전에 닦아야 하는 이유에 따로 적어뒀는데, 거기서 발목을 잡는 건 부품에 남은 물기고 여기서 발목을 잡는 건 몸통 안에 꽂힌 채 잠든 건전지입니다.
빼고 넣는 순간에 갈리는 것들
어긋나는 지점은 대개 '건전지를 안 뺐다'가 아닙니다. 빼고 넣는 그 짧은 순간의 손버릇에서 갈립니다. 아래 다섯은 기준을 알고 있어도 손이 먼저 움직여 버리는 자리들입니다.
- 새것과 헌것을 한 칸에 섞어 넣습니다. 먼저 바닥나는 쪽이 셀 역전을 일으켜 반응이 빨라지니, 넣기 전에 헌 것끼리 새 것끼리 갈라 두는 게 낫습니다. 리모컨처럼 두 개가 나란히 들어가는 칸에서 특히 자주 나옵니다.
- 극성 표시를 안 보고 끼웁니다 — 거꾸로 들어간 하나가 나머지 전부를 반대로 충전하는 상태를 만듭니다. 자연스러운 혼용보다 훨씬 급하게 진행되는 쪽이라, 칸 안쪽에 새겨진 +·− 방향은 넣기 전에 눈으로 한 번 짚습니다.
- 다 쓴 걸 알면서 급할 것 없다고 그대로 둡니다. 방전된 채 머무는 시간이 그대로 누액이 자랄 시간입니다. 당장 쓸 일이 없는 기기라면 확인한 그 자리에서 빼는 편이 낫습니다. 뺀 것을 놓을 곳은 기기 옆이 아니라 건전지를 모아 두는 통 쪽입니다.
- 눅눅한 창고나 다용도실 상자를 보관 자리로 씁니다. 습도가 높으면 접점 바깥 금속이 먼저 부식돼 밀봉부가 더 쉽게 벌어집니다. 건조한 서랍이나 방 안 수납함 쪽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 다 쓴 것과 새것을 한 통에 모아 둡니다 — 나중에 꺼낼 때 어느 쪽인지 헷갈려 결국 다시 섞게 됩니다. 한쪽 끝에 테이프를 붙이거나 통을 아예 나누면 이 혼동은 안 생깁니다.
여기서부터는 교체가 아니라 폐기입니다
접점에 하얀 가루가 앉았다면, 다음 순서는 손질이 아니라 판정입니다.
먼저 젖었는지 말랐는지부터 봅니다. 가루가 바싹 말라 부슬거리면 새어 나온 지 시간이 지나 굳은 쪽이고, 접점 둘레가 축축하게 번들거리면 아직 새는 중일 수 있습니다. 젖어 있는 쪽은 건전지를 먼저 빼내 통풍되는 자리에 따로 두고, 기기는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댑니다.
젖은 채로 문지르면 알칼리 성분이 칸 밖으로 더 넓게 번집니다. 순서를 바꾸면 닦을 면적이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판정 자체는 눈과 손끝으로 끝납니다. 마른 면봉으로 가루를 살짝 걷어냈을 때 안쪽 스프링이 원래 모양 그대로 금속빛을 내고 있으면 표면에만 앉은 정도라 되살릴 수 있는 상태입니다. 면봉에 식초를 조금 묻혀 문지르면 알칼리 성분이 중화되며 가루가 잘 떨어지고, 그다음 마른 천으로 물기를 걷어내고 완전히 말린 뒤에 새 건전지를 넣습니다. 가루는 알칼리성이라 맨손으로 오래 만지면 피부가 따가울 수 있습니다만, 장갑이나 면봉을 쓰고 끝나고 손을 씻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접점 모양에 따라 봐야 할 자리가 조금 다릅니다. 코일 모양 스프링은 감긴 줄 사이사이에 가루가 끼어서 겉면만 훔치면 안쪽에 그대로 남고, 납작한 판스프링은 눌린 면 전체가 닿는 자리라 얇게 남은 막 하나에도 접촉이 끊깁니다. 어느 쪽이든 닦아낸 뒤에 손톱으로 살짝 눌러 되튀는 힘이 남았는지 확인합니다.
되튀지 않으면 거기서 끝입니다.
스프링이 눈에 띄게 가늘어졌거나, 색이 거무스름하게 죽었거나, 눌러도 탄력 없이 주저앉아 있다면 부식이 금속 안쪽까지 들어간 상태입니다. 이건 닦아서 돌아오지 않습니다. 부품 교체나 기기 폐기 쪽입니다. 가루가 접점을 넘어 안쪽 회로 기판까지 번져 있다면 더 볼 것도 없습니다.
새어 나온 건전지는 다시 쓰는 물건이 아닙니다. 접점을 아무리 잘 닦아도 그렇습니다. 내부 반응이 이미 끝난 쪽이라 남은 전력도 거의 없고, 다시 넣어도 같은 일을 금방 반복합니다. 폐건전지 전용 수거함에 따로 버리는데, 여러 개를 모아 뒀다면 양 끝 단자에 테이프를 한 조각씩 붙여 서로 닿지 않게 담습니다. 단자끼리 맞닿은 채 굴러다니면 남아 있던 전기가 흐르며 열이 오르기도 하거든요.
- 계절이 끝나 몇 달 안 쓸 기기는 건전지를 미리 뺀다.
- 넣을 때 새것과 헌것, 브랜드가 다른 것을 섞지 않는다.
- 넣기 전 칸 안쪽 극성 표시를 확인한다.
- 보관 자리는 건조하고 서늘한 쪽으로 고른다.
- 가루가 보이면 만지기 전에 젖었는지, 스프링이 되튀는지부터 본다.
- 새어 나온 것은 단자에 테이프를 붙여 폐건전지함에 버린다.
넣어둘지 뺄지는 한 번 정하면 끝나는 규칙이 아닙니다. 기기가 늘거나 쓰는 계절이 바뀌면 확인 주기도 같이 움직이니, 그때마다 이 기준을 한 번씩 다시 대보는 쪽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