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은 유통기한보다 개봉 후 표시로 판단합니다

화장품 용기에 찍힌 개봉 후 사용기간은 유통기한과 다른 기준으로 흘러가고, 손가락으로 덜어 쓰는지 펌프로 짜는지에 따라서도 실제 여유가 달라집니다. 표시를 읽는 법과 보관 자리를 정하는 두 가지 기준을 정리했습니다.

화장품 용기 겉면에 뚜껑 열린 항아리 모양과 숫자가 나란히 찍혀 있다면, 그 숫자는 제품을 만든 날짜가 아니라 실제로 뚜껑을 처음 연 날짜부터 세기 시작하는 사용 가능 기간을 가리키는 표시입니다.

유통기한은 뜯지 않은 채 두었을 때를 전제로 인쇄되지만, 이 표시는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조건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미리 깔고 마련된 숫자입니다. 그래서 두 표시는 서로를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라, 미개봉과 개봉 이후를 각각 맡아 나란히 붙어 있는 별개의 기준입니다.

화장품에도 유통기한이 있는데 표시가 왜 하나 더 붙을까요?

뚜껑을 여는 순간 공기와 빛, 손끝이 그 안으로 함께 들어오기 때문에, 미개봉 상태를 기준으로 매긴 유통기한 하나만으로는 그 이후에 일어나는 변화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화장품 안에는 산화나 변질을 늦추기 위한 성분이 함께 들어 있는데, 이 성분들은 뚜껑이 닫혀 있는 동안에는 거의 일을 하지 않다가 공기와 만나는 순간부터 서서히 소모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제조사는 미개봉 유통기한과는 별개로, 뚜껑을 연 뒤 안전하게 쓸 수 있다고 보는 기간을 항아리 그림과 숫자로 따로 표시해 둡니다.

이 판정 방식은 냄새와 혀끝 자극으로 기름 산패를 가리는 판정법과는 판단의 축이 다릅니다. 기름병에는 개봉 후 며칠까지라는 숫자가 따로 인쇄돼 있지 않아서 그때그때 냄새와 혀끝의 감각으로 판정해야 하지만, 화장품은 처음부터 개봉 후 기간이 숫자로 인쇄돼 있어 감각보다 그 표시와 개봉일 기록을 먼저 봅니다.

표시를 못 찾았다고 해서 바로 없다고 단정할 일은 아닙니다. 용기 옆면이나 바닥, 상자 안쪽처럼 눈에 잘 안 띄는 자리에 작게 인쇄돼 있는 경우가 많아, 처음에는 지나치기 쉬운 것뿐일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알고 나면 두 물건을 같은 잣대로 판정하려던 습관부터 내려놓게 되죠.

다만 정말로 없는 통도 있습니다.

항아리 그림 없이 날짜로 된 사용기한만 인쇄된 제품도 있습니다. 어느 제품이 그런지는 제품마다 달라 통을 직접 봐야 알 수 있고, 이런 통은 표시가 대신 판단해 줄 것이 없어 뚜껑을 연 날짜를 스스로 적어 두는 습관이 오히려 더 중요해집니다.

에어리스 펌프처럼 내용물이 거의 진공에 가깝게 밀봉된 채로 나오는 구조라면, 공기가 그만큼 덜 들어가기 때문에 같은 성분이라도 표시된 개월 수가 다른 용기보다 넉넉하게 잡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숫자만 보고 넘기지 말고 그 통이 어떤 방식으로 밀봉돼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용기에 그려진 항아리 그림이 개봉 후 쓸 수 있는 기간입니다

이 그림은 뚜껑이 살짝 들린 항아리 모양 옆에 숫자와 영문 M이 함께 적힌 형태로, 그 숫자가 개월 수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그림 옆에 12M이라고 적혀 있다면 뚜껑을 연 날짜로부터 열두 달 안에 쓰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몇 개월로 적혀 있는지는 제품마다, 같은 브랜드의 다른 라인마다도 서로 다르게 인쇄돼 있어서, 이 숫자만큼은 통을 직접 들여다봐야 확인되는 값입니다. 정해진 평균치를 외워 두는 쪽보다, 새 제품을 살 때마다 그 자리를 한 번 확인해 두는 습관이 더 정확한 판단으로 이어집니다. 이 표시는 보통 바코드 옆이나 용기 바닥 테두리처럼 다른 정보와 함께 인쇄되는 자리에 붙어 있어서, 뒤집어 보거나 옆면을 한 바퀴 돌려 봐야 나오는 경우도 흔합니다. 겉포장이 아니라 통 자체를 봐야 합니다.

이 표시가 날짜가 아니라 개월 단위로 끊어져 있는 것도 이유가 있는데, 하루 이틀 차이로 상태가 갑자기 달라지는 값이 아니라서 개월 단위로 여유를 두고 표시하는 쪽이 실제 사용 습관에 더 맞기 때문입니다. 액상에 가까운 포뮬러는 공기와 닿는 순간부터 변화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는 편이고, 왁스나 오일 베이스의 고형 제품은 상대적으로 그 속도가 느린 편이라서, 겉보기엔 비슷한 통에 담겨 있어도 인쇄된 개월 수가 서로 다르게 잡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이 숫자가 가정하는 조건은 하나로, 정해진 방식대로 덜어 쓴다는 전제입니다. 그 전제가 흔들리면 숫자도 그대로 안 맞습니다. 용기 형태에 따라 손이 내용물에 닿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서, 같은 숫자가 찍혀 있어도 실제로 버틸 수 있는 여유는 용기마다 다르게 줄어듭니다.

용기 형태별 접촉 방식과 보관 시 먼저 확인할 것
용기 형태손이 닿는 방식보관 시 먼저 확인할 것
펌프·스포이드 용기(로션·에센스 등)누르는 동작 하나로만 나오고, 손가락이 내용물에 직접 안 닿음개봉일 기록 여부, 펌프 헤드 주변에 굳은 자국이 있는지
튜브·스퀴즈 용기짜내는 방식이라 입구 쪽만 짧게 공기에 노출됨입구 주변이 말라 굳었는지, 뚜껑이 완전히 닫히는지
저(항아리)형 크림 용기손가락을 직접 넣어 뜨는 경우가 많아 여닫을 때마다 표면이 새로 노출됨별도 스파출라가 있는지, 표시 기간보다 짧게 보는 편이 안전
스틱형(립스틱·컨실러 등)접촉 없이 발리지만 뚜껑 밀폐가 관건뚜껑이 끝까지 잠기는지, 심 끝이 갈라지거나 색이 바뀌었는지
브러시형(마스카라·아이라이너)매번 브러시가 공기와 닿고, 뽑고 넣는 동작이 통 안으로 공기를 함께 밀어 넣음표시 기간을 다른 제품보다 더 엄격하게 지키는 편
파우더·팩트형(쿠션·팩트 등)손가락이 아니라 퍼프를 통해 간접적으로 닿음젖은 퍼프를 그대로 덮어 두면 그 습기가 안에 갇혀 표면이 눅눅해질 수 있으니 퍼프를 말려서 넣었는지 확인

같은 브랜드의 세럼이라도 펌프형과 저형 두 가지로 나올 때 표시된 개월 수가 다르게 인쇄된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라 용기 구조가 애초에 그 기간을 정하는 데 함께 반영돼 있다는 뜻입니다. 저자극이나 무방부제를 내세우는 라인은 방부 체계를 단순화하는 경우가 많아, 같은 브랜드의 다른 제품보다 표시된 개월 수가 오히려 짧게 잡히기도 합니다. 순하다는 인상과 오래 쓸 수 있다는 인상은 서로 다른 이야기라, 이런 제품일수록 표시를 더 챙겨 봐야 하는 쪽이라고 봅니다.

아이섀도 팔레트처럼 여러 색이 한 판에 담긴 제품은 항아리 그림이 하나만 찍혀 있어도 색상마다 조성이 조금씩 달라 노출 속도가 똑같지 않을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손이 제일 많이 가는 칸을 기준으로 삼아 여유 있게 관리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표시 방식이 도입되기 전에 만들어진 재고 제품이라면 이 그림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어, 그때는 뚜껑을 연 날짜를 기준으로 스스로 관리 기간을 여유 있게 잡아 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통 하나의 표시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옷장 구조로 제습제 자리를 정하는 판단 기준에서도 같은 물건이라도 처한 조건에 따라 놓을 자리가 달라지는 논리를 다뤘는데, 화장품 역시 숫자 하나가 아니라 용기 형태까지 함께 봐야 결론이 납니다.

손가락으로 덜어 쓰면 정말 더 빨리 상할까요?

짧게 답하면, 상하는 속도 자체가 달라진다기보다 표시된 숫자가 전제한 조건에서 멀어지는 쪽에 가깝습니다. 펌프나 스포이드는 누르는 동작 하나로 필요한 양만 나오고, 그 순간 말고는 안쪽 내용물이 공기와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반면 손가락을 직접 넣어 뜨는 저형 크림은 여닫을 때마다 손끝과 공기가 함께 안으로 들어가고, 그 표면이 매번 새로 노출됩니다.

닿는 면적이 매번 늘어나는 셈입니다.

표시된 개월 수는 이런 반복 노출을 특별히 감안한 값이 아니라, 정해진 방식대로 사용하는 상황을 전제로 매겨진 숫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자주 뜨는 제품이라면 표시된 기간을 끝까지 채우기보다, 그보다 여유 있게 앞당겨 정리하는 편이 지금 쓰는 조건에 더 맞습니다. 따로 딸려 오는 미니 스파출라를 쓰면 손가락이 직접 닿는 횟수를 줄일 수 있어, 저형 용기라도 노출 조건을 펌프형에 가깝게 낮출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뚜껑을 여닫는 시간 자체도 변수입니다. 통을 열어 둔 채로 화장을 마저 하거나 다른 일을 보다 오는 습관이 있다면, 그 사이에도 공기와 만나는 시간이 계속 쌓여 노출 조건이 표시된 전제에서 조금씩 더 멀어집니다. 손을 씻고 만지는지 화장 중간에 급하게 만지는지 같은 사소한 차이도 매번 쌓이면, 표시된 조건과의 거리를 눈에 띄게 벌리죠.

접촉 방식이 결과를 가르는 구조는 다른 물건에서도 비슷합니다. 소재별로 접거나 압축하는 이불 정리 기준도 이불이 어떻게 눌리고 손에 닿는지에 따라 같은 계절 안에서도 대응이 달라지는데, 화장품 역시 무엇으로 몇 번을 만지느냐가 표시된 숫자 못지않게 결과를 좌우합니다.

보관 자리를 정하는 두 가지 기준

보관 자리를 정할 때 먼저 볼 것은 온도 하나가 아니라 빛에 노출되는 시간과 온습도가 얼마나 자주 오르내리는지, 이 두 가지입니다.

직사광선이 드는 창가나 화장대 위는 겉보기에는 깔끔해 보여도, 빛과 열에 반복해서 닿는 자리라 안에 든 오일 성분의 변질을 앞당기는 조건이 됩니다. 유리병에 담긴 제품일수록 빛이 그대로 통과해 닿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여름철 실내라면 창가가 아니어도 하루 중 몇 시간은 뜻밖에 뜨거워지는 자리가 생기는데, 온도계 없이 손등을 잠깐 대 보는 것만으로도 대략의 판단이 서죠.

습도가 오르내리는 폭이 큰 자리도 마찬가지로 피하는 편이 나은데, 뜨거운 물로 씻는 동안 잠깐 습도가 확 오르고 창을 열거나 환풍기가 돌면 다시 빠르게 낮아지는 욕실 선반이 대표적입니다. 이 오르내림이 반복되면 뚜껑 안쪽에 물기가 맺혔다 마르기를 되풀이하면서 밀폐를 담당하는 부위가 먼저 상하고, 환풍기를 켜 둬도 습도가 잘 안 빠지는 욕실이라면 이 오르내림 폭이 더 크게 벌어집니다. 환풍기가 돌아가도 욕실 습기가 안 빠지는 원인 판정법에서 다룬 급기 부족이나 풍량 저하 상태라면, 화장품을 두는 자리로는 더더욱 맞지 않습니다.

온도만 보고 안심할 일이 아닙니다.

다음 네 가지는 보관 자리를 정할 때 아예 후보에서 빼 두는 편이 낫습니다.

  • 습기가 오르내리는 욕실 선반에 뚜껑을 연 채로 오래 두지 않는다.
  • 여름철 자동차 안 대시보드처럼 온도가 크게 오르는 자리에 두고 다니지 않는다.
  • 창가처럼 직사광선이 하루 중 오래 드는 자리에 늘어놓지 않는다.
  • 뚜껑을 헐겁게 닫아 밀폐가 깨진 채로 두지 않는다.

빛도 열도 없는 서랍 안쪽이 밋밋해 보여도, 화장품에는 그 밋밋함이 가장 안전한 조건입니다.

개봉일을 안 적어두면 표시가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표시 읽는 법과 보관 자리 기준도, 정작 개봉일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셈을 시작할 지점이 없어 그대로 무용지물이 됩니다.

  • 표시된 숫자를 유통기한처럼 여기고 개봉일을 따로 적어 두지 않는 것 — 그 숫자는 개봉한 날짜부터 세는 기간이라, 언제 열었는지 모르면 계산할 기준 자체가 사라집니다. 뚜껑 안쪽이나 라벨 여백에 유성펜으로 개봉일을 적어 두면 해결됩니다.
  • 세일 폭이 크다고 여러 개를 한꺼번에 뜯어 두는 것 — 개봉하는 순간부터 표시된 기간이 흐르기 시작하므로, 미리 열어 둔 만큼 남은 여유도 그만큼 줄어듭니다. 쓰던 통을 다 비운 뒤에 다음 통을 여는 편이 낫습니다.
  • 여행용 소분 용기에 옮겨 담으면서 원래 통의 개봉일을 함께 옮기지 않는 것 — 기간은 옮겨 담은 시점이 아니라 원래 통을 처음 연 시점부터 흐르고 있어서, 소분 용기만 봐서는 그 기준을 알 수 없습니다. 옮길 때 개봉일도 함께 적어 두면 됩니다.
  • 매장에서 미리 뜯어 둔 샘플이나 테스터를 새 제품과 같은 기준으로 쓰는 것 — 테스터는 이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개봉 후 기간이 한참 흘렀을 가능성이 큽니다. 새 제품과 같은 기간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네 가지 모두 뿌리를 따라가면 시작점을 남기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는 공통점으로 모이고, 표시를 읽을 줄 알아도 그 표시가 언제부터 셈해지는지 적어 두지 않으면 읽은 보람이 없습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이 시작점이니, 그 날짜 하나만 적어 두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는 판단이라고 봅니다.

정리하기 전에 확인할 것

  1. 뚜껑을 처음 여는 날 유성펜으로 개봉일을 적어 둔다.
  2. 용기 옆면·바닥·상자 안쪽에서 항아리 그림과 숫자를 찾아 확인한다.
  3. 손가락으로 직접 뜨는 용기는 표시 기간보다 여유 있게 앞당겨 정리한다.
  4. 직사광선이 드는 창가·화장대 위 보관을 피한다.
  5. 습도가 크게 오르내리는 욕실 선반에는 장기로 두지 않는다.
  6. 미리 뜯어 둔 여러 통을 한꺼번에 열어 두지 않는다.

참고 자료

  •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화장품법」 제10조(화장품의 기재사항) — 화장품 포장에 적어야 하는 항목으로 '사용기한 또는 개봉 후 사용기간'이 조문에 실재함을 확인
  • 법제처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화장품의 기재·표시 사항」(근거: 화장품법 시행규칙 제19조) — 개봉 후 사용기간을 적을 때는 제조연월일을 함께 표기하며, 개봉 후 사용기간을 나타내는 심벌과 기간을 표시할 수 있다는 서술 확인

이 글은 누가 정리했나

강수지(필명) 자료를 대조해 정리합니다.

내용은 운영 과정에서 순차적으로 보완됩니다. 어떤 기준으로 다루는지는 편집 원칙에 적어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