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크고 나서 정리한 장난감 상자를 몇 달 만에 열어 보면, 넣을 때와 상태가 달라져 있는 것들이 섞여 있습니다. 어떤 것은 손에 쩍쩍 달라붙고, 어떤 것은 눅눅한 냄새가 나고, 어떤 것은 색만 옅어져 있습니다.
같은 상자에 나란히 있었는데도 달라지는 방향이 제각각입니다. 재질이 서로 다르고, 재질마다 시간이 지날 때 벌어지는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 방식으로 다 담으면 어느 하나는 반드시 불리한 조건에 놓입니다.
재질마다 무너지는 자리가 다릅니다
말랑한 플라스틱 장난감에는 재질을 부드럽게 유지해 주는 성분이 함께 섞여 들어갑니다. 이 성분은 재질 안에 단단히 붙박여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동안 표면 쪽으로 아주 천천히 옮겨 오고, 몇 달 만에 꺼냈을 때 손에 닿는 끈적임은 그렇게 겉으로 올라온 성분입니다. 그 위에 먼지가 앉으면 회색빛으로 지저분해 보이는데, 때가 유난히 많이 탔다기보다 먼지를 붙잡아 두는 면이 새로 생겼다고 보는 편이 실제에 가깝습니다.
이 이동은 주변이 덥고 밝을수록 빨라집니다. 창가에 둔 상자와 붙박이장 안쪽에 넣어 둔 상자가 같은 기간이 지난 뒤에 서로 다른 상태로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고, 겨울에 난방기와 가까운 벽 쪽에 붙여 둔 상자도 비슷한 조건에 놓입니다. 반대로 서늘하고 빛이 들지 않는 자리에서는 같은 변화가 훨씬 느리게 진행됩니다. 담는 방식을 아무리 손봐도 두는 자리를 바꾸지 않으면 효과가 크지 않은 것이 그래서입니다.
딱딱한 플라스틱은 이 경로를 거의 타지 않는 대신 다른 쪽으로 달라집니다. 빛을 오래 받으면 색이 옅어지는데, 여러 색이 섞인 장난감이라면 빨강이나 자주 계열이 먼저 힘을 잃어 전체 인상이 바뀌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흰 부분이 누렇게 뜨는 것도 같은 계열의 변화이고, 이쪽은 되돌릴 방법이 마땅치 않아 애초에 빛을 덜 받게 두는 것 말고는 손쓸 자리가 없습니다.
봉제 인형은 전혀 다른 축에서 상합니다. 섬유 사이에는 놀면서 묻은 먼지와 손에서 옮겨 간 기름기가 눈에 안 보이게 쌓여 있고, 여기에 물기까지 더해지면 냄새가 자리를 잡습니다. 플라스틱이 마르면서 문제가 생긴다면 봉제는 덜 마른 채로 갇혀서 문제가 생기는 셈이라, 같은 상자에 넣더라도 신경 쓸 방향이 서로 반대입니다.
원목 장난감은 주변 습도를 따라 물기를 먹었다 뱉었다 하면서 아주 조금씩 부피가 달라집니다. 이 폭이 크게 오르내리면 결을 따라 미세한 틈이 생기고, 젖은 채로 오래 두면 마른 뒤에 표면이 까슬까슬해집니다. 아이가 입에 넣는 물건이라 자주 닦게 되는데, 젖은 천으로 훔친 뒤 곧바로 마른 천으로 물기를 걷어 내는 것과 그냥 두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의 차이가 바로 여기서 갈립니다.
물놀이 장난감은 여기서 따로 떼어 봐야 합니다. 몸통에 구멍이 뚫려 물을 빨아들였다 뿜는 종류는 안쪽에 물이 남기 쉽고, 그 물이 마르지 않은 채 상자에 들어가면 안에서 곰팡이가 자랍니다. 겉은 깨끗한데 눌렀을 때 거뭇한 것이 함께 튀어나오면 그 상태입니다.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넣기 전에 구멍을 아래로 두고 물기를 충분히 빼는 것 말고는 손쓸 자리가 마땅치 않고, 이미 번진 뒤에는 되살리기보다 정리하는 쪽으로 봅니다.
색이 옮겨 붙는 일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색의 말랑한 플라스틱이 오래 맞닿은 채 눌려 있으면 진한 쪽 색이 옅은 쪽으로 조금씩 배어드는데, 겉으로 올라온 성분이 그 사이를 잇는 다리 노릇을 합니다. 흰 부품에 남은 붉은 자국이 씻어도 안 빠지는 것은 때가 묻은 것이 아니라 색 자체가 옮겨 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자 안에서 눌려 있던 자리와 자국의 모양이 겹치는지 보면 금방 구분이 됩니다.
퍼즐이나 보드게임처럼 두꺼운 종이로 된 것도 한 갈래를 이룹니다. 판지는 습기를 먹으면 층 사이가 미세하게 벌어져 가장자리가 부풀고, 마른 뒤에도 그 자리는 원래대로 붙지 않습니다. 조각이 잘 안 맞거나 상자 뚜껑이 뻑뻑해졌다면 그 변화로 봅니다. 이쪽은 눌러 두는 것보다 습기가 덜한 자리로 옮기는 것이 먼저입니다.
금속 부품이 섞여 있는 것은 또 다르게 봐야 합니다. 나사나 자석, 스프링이 들어간 장난감은 습기가 도는 자리에서 그 부분부터 녹이 오르고, 녹물이 번지면 플라스틱이나 천에 옅은 갈색 자국을 남깁니다. 겉은 멀쩡한데 이음매 둘레에만 자국이 앉아 있다면 이 경로를 먼저 의심합니다.
그래서 몇 달 만에 상자를 열었을 때 무엇이 달라져 있는지를 보면 원인을 거꾸로 짚어 갈 수 있습니다. 끈적하면 열과 시간을, 냄새가 나면 남아 있던 물기를, 색이 옅어졌으면 빛을 의심하는 식입니다. 한 상자에서 세 가지가 한꺼번에 나왔다면 무엇을 어떻게 담았느냐보다 그 상자를 어디에 두었느냐를 먼저 보는 편이 빠릅니다.
끈적해진 플라스틱은 되돌릴 수 있나요?
되는 경우와 안 되는 경우가 뚜렷하게 갈립니다. 표면에 올라온 성분이 아직 얇게 묻어 있는 정도라면 마른 천으로 한 번 훔쳐 내고, 그래도 손에 걸리는 느낌이 남으면 미지근한 물에 중성세제를 조금 풀어 닦은 뒤 물기를 완전히 걷어 내는 것으로 대개 가라앉습니다.
다만 이것은 그 순간 겉에 나와 있던 것을 걷어 낸 것뿐이라, 안쪽에 아직 남아 있으면 시간이 지나 다시 올라옵니다. 닦고 몇 주쯤 지나 또 끈적해진다면 그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봅니다. 한 번 닦고 끝나는지 자꾸 되돌아오는지가 갈림길입니다. 이때는 닦는 주기를 앞당기는 것보다 서늘하고 어두운 자리로 상자를 옮기는 쪽이 다음 번까지의 간격을 늘려 줍니다.
되돌릴 수 없는 상태도 있습니다. 성분이 빠져나갈 만큼 빠져나간 뒤에는 재질이 뻣뻣해지고 손으로 굽히면 흰 금이 가거나 아예 갈라집니다. 끈적임이 저절로 사라지고 대신 딱딱해졌다면 회복된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이라, 아이가 힘주어 쥐는 물건이라면 이때를 정리할 자리로 잡는 편이 낫습니다.
끈적임과 헷갈리기 쉬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스티커를 떼어 낸 자리에 남은 접착제도 손에 달라붙는데, 이쪽은 재질 문제가 아니라 얹혀 있는 것이라 닦으면 그걸로 끝납니다. 구분은 범위로 합니다. 물건 전체가 고르게 끈적하면 안쪽에서 올라온 것이고, 네모나게 한 자리만 끈적하면 스티커 자국입니다.
닦을 때 피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알코올이나 아세톤 같은 것으로 문지르면 끈적임은 빠르게 걷히지만 인쇄된 그림이 함께 지워지고 표면이 뿌옇게 뜨는 일이 생깁니다. 굳이 써야 한다면 눈에 잘 띄지 않는 바닥면에 먼저 대 보고 판단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봉제 인형은 밀폐해서 넣어도 되나요?
속까지 완전히 마른 상태라면 밀폐가 오히려 낫습니다. 먼지가 앉을 길과 벌레가 드나들 길을 함께 막아 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말라 보이는 상태와 실제로 마른 상태가 자주 어긋난다는 데 있습니다.
봉제 인형은 겉감이 보송해진 뒤에도 안쪽 솜이 한참 늦게 마릅니다. 세탁하고 하루 만에 겉을 만져 보고 그대로 봉지에 넣었다가 몇 달 뒤 눅눅한 냄새로 돌아오는 일이 흔한데, 남아 있던 물기가 빠져나갈 곳을 잃고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렀을 때 서늘한 기운이 올라오면 아직 덜 마른 것으로 보고 하루쯤 더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넣기 전에 눌러 볼 자리도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목이나 팔 이음매처럼 솜이 두껍게 뭉쳐 있는 곳, 그리고 눈이나 코 같은 부품이 박혀 있는 둘레가 가장 늦게 마릅니다. 이 몇 군데만 손끝으로 확인해도 겉만 보고 성급하게 담는 실수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자리를 아끼려고 진공팩에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피는 확실히 줄지만 눌린 자국이 오래 남고, 솜이 한번 뭉치면 꺼낸 뒤에 손으로 두드려도 원래 모양이 다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오래 두지 않을 것이라면 헐겁게 담는 편이 낫습니다. 눌린 자국은 꺼낸 뒤 그늘에 하루쯤 펼쳐 두면 어느 정도 펴집니다.
세탁하지 않고 그대로 넣는 경우라면 먼지만이라도 털어 내는 편이 낫습니다. 표면에 앉은 먼지는 섬유 사이의 습기를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하고, 그 상태로 오래 갇혀 있으면 냄새가 시작되는 지점이 됩니다. 이 구조는 장마철 곰팡이에서 다룬 것과 같은 계열이라, 판단 기준을 그대로 가져와도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상자에 담기 전에 갈라 둘 것
담는 일보다 갈라 두는 일이 먼저입니다. 재질이 섞인 채로 한 상자에 들어가면 어느 하나는 반드시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되고, 몇 달 뒤에 그쪽부터 상해서 나옵니다.
넣기 전 확인
- 소리 나거나 불이 들어오는 것에서 건전지를 뺀다
- 봉제는 속까지 말랐는지 이음매를 눌러 확인한다
- 말랑한 플라스틱과 봉제를 같은 봉지에 담지 않는다
- 원목은 젖은 천으로 닦은 뒤 마른 천으로 물기를 걷는다
- 상자를 두는 자리가 창가나 난방기 근처가 아닌지 본다
건전지는 무엇보다 먼저 봅니다. 오래 넣어 둔 건전지가 새면 안쪽 접점이 부식되어 기기 자체를 못 쓰게 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흘러나온 액이 상자 안의 다른 물건까지 함께 상하게 합니다. 몇 달씩 잠재울 물건에서 빼 둘지 판단하는 기준은 배터리 누액 쪽에 정리한 것과 같습니다.
말랑한 플라스틱과 봉제를 같은 봉지에 담지 않는 것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플라스틱에서 겉으로 올라온 성분이 천에 옮겨 붙으면 그 자국은 빨아도 잘 빠지지 않고 그 자리만 거뭇하게 남습니다. 칸을 따로 나누기 어렵다면 플라스틱 쪽만 지퍼백에 담아 두는 정도로도 이 경로는 끊깁니다.
스티커나 데칼이 붙은 것은 따로 봐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접착제가 굳어 가장자리가 들뜨거나, 반대로 눌린 자리에서 끈적하게 배어 나옵니다. 여러 개를 겹쳐 담으면 그 면이 아래위 장난감에 그대로 옮겨 붙으니, 사이에 종이를 한 장씩 끼워 두는 것만으로도 덜해집니다.
상자를 무엇으로 할지도 한 번은 정해 둘 만합니다. 종이 상자는 가볍고 통풍이 되는 대신 바닥부터 습기를 먹어 물러지고, 플라스틱 통은 튼튼한 대신 안에서 생긴 물기가 나갈 길이 없습니다. 봉제가 많으면 종이 쪽이, 플라스틱이 많으면 뚜껑 있는 통 쪽이 무난합니다. 어느 쪽이든 바닥에 바로 놓지 않고 조금 띄워 두는 편이 낫습니다.
오래 둔 뒤 다시 꺼낼 때는 무엇을 보나요?
꺼내자마자 아이에게 건네기 전에 두 가지만 봅니다. 손으로 만져 보아 끈적임이 남아 있는지, 코를 가까이 대어 냄새가 올라오는지입니다. 둘 다 걸리지 않으면 그대로 다시 써도 되는 상태로 봅니다.
둘 중 하나라도 걸리면 아이에게 주기 전에 손을 봅니다. 끈적임이 있으면 앞에서 다룬 순서대로 닦고 물기를 걷어 내면 됩니다. 냄새 쪽은 닦는 것으로 잘 사라지지 않고 공기가 통해야 빠지는데, 볕이 직접 닿지 않는 그늘에 하루 이틀 펼쳐 두면 눈에 띄게 옅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남아 있다면 안쪽 솜까지 밴 것이라 세탁 쪽으로 넘겨야 합니다.
부품이 헐거워지지 않았는지도 이때 함께 봅니다. 눈이나 코처럼 작게 박힌 부품은 오래 눌려 있으면 실이 삭아 흔들리게 되고, 상자 안에서 이미 떨어져 굴러다니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가 쥐고 노는 물건이라면 이 확인을 다른 무엇보다 앞에 두는 편이 낫습니다.
다시 넣을 것과 정리할 것을 이때 가르는 편이 낫습니다. 닦아서 돌아오는 것, 통풍으로 냄새가 빠지는 것은 다시 담아도 됩니다. 반면 재질이 뻣뻣해져 갈라지기 시작한 것, 부품이 헐거워져 빠지는 것은 다음 상자에서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다시 담아 두면 몇 달 뒤에 같은 판단을 한 번 더 하게 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상자 자체를 들여다봅니다. 안쪽 바닥이 눅눅하거나 종이 상자가 물러져 모양이 주저앉아 있다면 담긴 물건보다 둔 자리가 문제였던 것이고,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넣으면 다음에도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이 구분 하나가 다음번에 손댈 자리를 훨씬 빨리 좁혀 줍니다.